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성호/선수 경력 (문단 편집) === 2007 시즌 === 2007년에는 구단 선수들의 투표에 의해 [[주장]]으로 선출되었다. 시즌 초 [[최희섭]]이 메이저리그에서 완전히 연을 끊고 영구 귀국하여 아예 한국 리그에 오면서 KIA에 합류하자, 장성호는 1루수를 최희섭에게 내준 뒤 본인은 신인 시절처럼 좌익수로 출장하게 되었다.[* 흔히 이 시절 장성호가 최희섭에게 1루수를 내주고 좌익수로 밀려나 커리어 하락의 계기가 된 걸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으나 사실이 아니다. 장성호는 해태 시절이었던 99년까지만 해도 좌익수로 출장하는 비중이 높았고 1루수 고정 이후에도 간간히 좌익수 알바를 뛰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크게 타선이 보강되지 않은 타이거즈의 대들보였으며 '''김기아'''라고 놀림받던 타선에서 [[이용규]]와 플루크시즌이었던 [[이현곤]]과 함께 그나마 믿을 수 있는 타자였다. 그러나 2007년 6월 27일 한화전에서 홈으로 들어오던 중 [[신경현]]과 충돌로 인해 무릎에 부상을 당했는데, 부상을 입은 상태로 휴식 및 재활을 하지 않고 본인의 연속 3할 타율 기록 경신과 [[서정환]] 감독의 역대급 망상이었던 서머리그 우승을 위해[* 2007년 한 해에만 있었던 제도로, 7월 15일~8월 14일까지 기간을 서머리그로 따로 지정해 정규리그 순위와 별도로 해당 기간동안 승패 및 승률로 서머리그 순위를 매긴 뒤 우승팀에게는 상금 2억을 지급하였다. 당시 서머리그 우승팀은 [[삼성 라이온즈]].] 계속 출장을 강행하면서 결국 부상이 악화되었고, 결국 이후 '''커리어 하락의 계기가 되었다.''' 대신이라면 이 시기에 장성호의 유명한 절구질[* 마침 이 경기는 [[한기주]]가 [[이대호]]로부터 위협구 뒤 만루홈런을 얻어맞은 경기로도 유명하다.]이 중계되었고, 장성호에 대한 부정적 편견[* 워낙 웃는 모습이 중계중에 자주 잡혔고 당시 엄격했던 분위기가 이어졌던 타이거즈 선수단 내부에서도 선수들간에 장난을 많이 치는 선수로 유명해 게임에 대해 별로 진중하지 못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당시 돌았다. 더욱이 신인시절 툭하면 김성한에게 농땡이 피운다고 혼난 일화가 더 유명한데다 그런데도 3할을 치니 [[게으른 천재]] 이미지가 생겨버렸다.]이 싹 날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10년 연속 3할이라는 리그의 대기록이 걸려있던 시즌이었기 때문에 팬들의 주목도도 높아졌던 시즌으로, 2005 시즌의 전설적인 활약의 이미지가 남아있던 덕에 시즌 말미에 경기가 끝날 때마다 장성호 타율을 계산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그러나 결국 부상의 여파로 10년 연속 3할타율은 실패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기록연장의 실패에서 멈추지 않고 본인의 커리어의 일종의 전환점이 되어버린 시기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